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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포

'4·19의 또다른 도화선' 3·15의거를 아시나요

by 오슈스 2021. 3. 15.

안녕하세요. 오슈스입니다.

오늘은 3월 15일. 바로 3·15의거 기념일인데요.
3·8의거 기념일과 함께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날로 유명하죠.

올해로 61주년을 맞는다고 하는데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한번 살펴볼까요?

우선 1960년 3월 15일, 당시 대통령 선거가 진행됐는데요.
문제는 이승만 자유당 정부가 장기집권을 위해 부정행위를 노골적으로 일삼았다는거죠. 

선거 당일. 자유당 정권은 사전 투표, 3인조·9인조 공개투표, 투표함 바꿔치기 등 온갖 부정선거 행위를 저질렀다고 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민주당은 선거를 포기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개표 과정에서 촌극이 벌어졌습니다. 
부통령 이기붕 표가 100%에 육박하자 이를 79%로 하향 조정했다는 일은 지금도 유명한데요 

"협잡 선거 물리치자"

공공연한 부정 행위에 마산 시민과 학생들은 분노했고, 이들은 시위대를 만들어 항의에 나섰다고 합니다. 
시위는 평화적으로 진행됐다고 알려졌는데 경찰이 최루탄 및 총기로 시위대에게 무차별 발포를 가하며 강제해산에 돌입했다네요. 

이 과정에서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게 됐다고 합니다. 
희생자가 발생하자 시위대도 분노했고, 경찰관서와 국회의원, 경찰서장 자택 등을 습격했다고 알려졌죠.
정부는 이 시위를 공산당이 배후에서 조종한 좌익 폭동이라고 발표했고 오히려 마산 시민들의 반발을 고조시켰는데요.

그러다 1차 의거가 한달여 지난 4월11일.

실종됐던 마산상고 김주열 학생이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상태로 마산 중앙부두에 떠올랐고 이를 낚시꾼이 발견했다고 하네요.
이에 극도로 분노한 많은 시민들이 경찰 만행을 규탄하며 일어나기 시작했고 2차 시위가 발발하게 됐다고 합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전국적으로 퍼지게 됐고 4·19혁명으로까지 이어지게 됐어요. 시위 목적도 부정선거 무효뿐만 아니라 이승만 정권의 퇴진 자체를 요구하게 됐는데요.

 

결국 이승만은 하야를 선언하며 하와이로 도피했고 시민들은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주의의 초석을 마련할 수 있게 됐습니다.

마산에서는 날을 기념하기 위해 3 15 부정선거에 항의한 마산시만, 학생들의 희생을 애도하는 기념탑을 세웠는데요, 기념탑 뒤편에는 날의 한과 희생을 담긴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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